
‘리전’은 기존 마블 히어로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식이나 문법을 완전히 벗어난 작품이다. 명확한 선악 구도와 친절한 설명, 시원한 전개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지만, 독특한 연출과 심리 중심의 서사를 좋아하는 미드 애호가라면 반드시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제작이다.
리전의 기본 설정과 줄거리
‘리전’은 찰스 자비에르의 아들로 설정된 데이비드 할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데이비드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강력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오랜 세월 정신병원 신세를 질 만큼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그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그의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 환각인지 끝까지 알 수 없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다. 시즌 1의 초반부에서 ‘리전’은 데이비드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일부러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화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시간 순서도 불명확하고, 현실과 환상이 쉼 없이 뒤섞인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화려한 초능력보다는,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낳는 공포와 혼란을 앞세운다. 리전은 전형적인 히어로가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데 더 가깝다.
연출과 미장센, 호불호의 핵심
이 작품을 대표하는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대담하고 실험적인 연출이다. 일반 드라마에선 보기 힘든 뮤지컬 장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과 은유, 현실감을 뒤흔드는 색감과 화면 구도가 시청자에게 계속 해석을 요구한다. 이런 연출 덕에 장면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에겐 이해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벽이 되기도 한다.
특히 시즌 2에서는 스토리 그 자체보다 형식과 분위기가 앞세워지면서,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린다. 설명이 거의 생략되고, 감정과 이미지가 주로 이야기를 이끌다 보니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쉽다. 누군가는 ‘드라마로 만든 예술 영화’라고 극찬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난해함만 남은 작품’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
데이비드 할러 역을 맡은 댄 스티븐스는 리전의 중심이자 핵심이다. 그는 불안과 공포, 분노, 광기까지 다양한 감정 변화를 매우 설득력 있게 연기해 내며, 데이비드라는 인물이 가진 복잡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데이비드는 단순한 히어로도, 전형적인 악당도 아닌, 한없이 불안정한 존재로 그려진다. 시드, 멜라니, 캐리 부부 등 주변 인물들 역시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저마다의 상처와 욕망을 품고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점 역시 리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상황이나 시점에 따라 영웅이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에, 시청자는 계속해서 ‘누가 과연 옳은가’ 판단하게 된다.
시즌별 완성도와 결말 평가
시즌 1은 리전이 가진 정체성을 가장 완성도 높게 보여준다. 혼란스러운 전개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의 미스터리로 수렴되는 구조 덕분에 몰입도가 상당하다. 시즌 2는 실험적 연출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고, 시즌 3에 이르러서는 비교적 명확한 이야기 흐름을 갖고 종착점으로 향한다. 마지막 결말도 결코 친절하지 않다. 모든 설정과 떡밥을 깔끔하게 풀어놓기보다, 기억과 선택, 자아라는 주제에 집중한 감정적인 마무리를 택한다. 그래서 기존 히어로물에서 기대하는 시원한 결말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허무할 수 있지만, 리전만의 세계관에 몰입한 시청자에겐 충분히 의미 있는 여운을 남긴다.
리전은 히어로라는 외형을 두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신, 기억,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대중적 재미보다는 창작자의 실험정신이 두드러진 작품이라 모두에게 권할 수는 없지만, 미드를 오래 봐온 이들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