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랑한 미드 '블랙리스트'
FBI 10대 수배범에 올라가 있는 거물 범죄 중개인 레이먼드 레딩턴이 어느 날 갑자기 FBI 본부에 나타나 자수한다. 그러면서 레딩턴은 자신이 1급 범죄자들의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면서 사법거래를 요구하고 그 조건으로 FBI의 신참 프로파일러인 엘리자베스 킨을 파트너로 붙여달라고 요구한다. 한편 암에 걸린 양아버지를 둔 채로 남편과 함께 아기의 입양을 꿈꾸며 행복하게 살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삶은 레딩턴과의 만남과 우연히 발견하게 된 남편의 가짜 여권들을 통해 급변하게 되는데...
(나무위키를 참고한 대충을 이야기 서사, 1회만 보고 레딩턴이랑 킨의 관계성을 추측하게 되는데 보면 볼수록 무슨 관계야??????? 상태로 물음표만 가득해져 갔다.)
시즌1부터 시즌10까지, 쉽지 않은 정주행
시즌1부터 시즌10까지 이어지는 블랙리스트는 결코 짧지 않은 드라마다. 사실 이렇게 긴 드라마를 끝까지 완주한 경우가 많지 않은데, 블랙리스트는 드물게 끝까지 보게 된 작품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길게 이어지는 드라마들 꽤 많이 본 것 같다. 우선 NCIS만 해도 시즌 20이 넘어갔으니까...)
이름만 들어본 상태에서 큰 정보 없이 시작했지만, 초반 몰입감은 상당했다.
에피소드형 구조, 거대한 설정, 그리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서사의 무게가 인물의 비밀과 정체성으로 옮겨가는 흐름까지 닮아 있다. 물론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부분은 긴 시즌이 진행되는 드라마들의 특징이듯이 이 드라마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그 기간을 이겨낸다면, 마지막까지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기본 구조와 매력
블랙리스트의 기본 골격은 단순하다. 미 정부와의 사법 거래를 통해, FBI 수배자 1순위에 올라 있는 레딩턴이 자신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악질 범죄자들을 FBI가 잡도록 돕는 구조다. 매 회차 새로운 범죄자가 등장하고, 그 범죄자는 대부분 우리가 뉴스에서나 접할 법한, 혹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악질들이다.
기상천외한 범죄 방식과 윤리의 선을 가볍게 넘어서는 전개는 확실히 이 드라마의 강점이다. 레딩턴은 때로는 법과 정의를 우회하며, 필요하다면 냅다 죽여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시원시원한 전개 덕분에 초중반 시즌들은 상당히 쾌감 있게 볼 수 있었다.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와의 차이점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가 AI가 ‘무시해도 된다’고 판단한 소규모 범죄를 미리 막는 구조였다면, 블랙리스트는 정반대에 가깝다. 블랙리스트 속 범죄자들은 사회 최상위 포식자들이며, 일반인은 존재조차 알기 힘든 그림자 같은 인물들이다.
이 차이 덕분에 블랙리스트는 보다 잔혹하고, 보다 현실적인 악을 다룬다는 인상을 준다. 이 점이 초반 시청을 계속 이어가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시즌 후반부, 무게 중심의 변화
다만 반복되는 에피소드 구조의 한계는 어쩔 수없나보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비슷한 패턴이 고착화되면서 긴장감은 점점 떨어진다. 초반의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던 이 드라마의 중심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작가는 이 위기를 레딩턴의 과거, 정체, 비밀이라는 거대한 미스터리로 돌파하려 한다.
문제는 이 지점부터다.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FBI가 블랙리스트 범죄자들을 잡는다는 본래의 구조는 점점 희미해지고, 이야기는 거의 전적으로 레딩턴의 비밀에 집중된다. 알려줄 듯 말 듯, 풀릴 듯 말 듯 이어지는 전개는 점점 답답함을 유발한다.
결국 맞아버린 불안한 예감
‘이거 결국 끝까지 안 알려주는 거 아니야?’라는 불안한 예감은 결국 적중했다.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해석에 맡기는 형태로 마무리된다. 레딩턴의 모든 비밀이 시원하게 정리되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다.
이 점은 블랙리스트가 가진 가장 큰 호불호 포인트다. (내가 이런 결말을 기대한 게 아닌데.... 어느 정도 해소된 부분도 물론 있긴 하다. 그러나 레딩턴에 관해서는 글쎄.... 관점의 차이이려나)
엘리자베스 킨, 이해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축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또 하나 아쉬웠던 부분은 엘리자베스 킨의 캐릭터다. 레딩턴과 함께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중심축을 담당하는 인물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사이코패스적인 행동들이 잦아진다.
초반 시즌에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선택들이 있었지만, 후반부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1 시즌이 극 중 시간으로 1년이라 치면, 최소 6~7년을 거의 부녀 관계처럼 지내온 레딩턴보다, 고작 몇 주 알고 지낸, 그것도 처음부터 자신을 속이고 접근한 인물을 더 신뢰하는 전개는 몰입을 크게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마지막 장면
많은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았던 마지막 장면은, 스포를 알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렬했다. 이 장면 하나만 놓고 보면, 블랙리스트는 끝까지 레딩턴이라는 캐릭터를 놓지 않은 드라마다.
결국 이 작품은 ‘레딩턴의, 레딩턴에 의한, 레딩턴을 위한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주행 추천? 그럼에도 YES
결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결말에 대한 불만도 많지만,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정주행 할 가치가 있는 드라마다.
특히 레이먼드 레딩턴이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된다.
요 몇 달간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였고, 이제는 톰 킨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블랙리스트: 리뎀션>도 볼 예정이지만,
시즌2가 캔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억에 남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가진 장수 범죄 미드. 블랙리스트는 그런 작품이다. 아무튼 엔딩이 아쉽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볼 수 없는 드라마였고, 마지막이 매우 아쉽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한 미드에 여전히 남아있다.